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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미 가득한 그곳, 정조의 수원 ‘화성행궁’
장수경 기자  |  jsk21@newscj.com
2017.09.14 0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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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행궁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그곳엔 정조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화성행궁을 거닐고 있으면, 옛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서울의 경복궁이나 창경궁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화성행궁. 그 안을 들여다보자.

◆정조의 화성행궁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화성행궁. 조선 제 22대왕 정조를 떠올리면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화성행궁은 왕이 항상 머물며 국사를 주관하는 본궁과 달리 전란이나 휴양, 능원, 참배 등으로 지방에 행사해 임시로 거처하던 곳이었다.

화성행궁은 화산 현륭원 참배의 목적 외에도 정조 임금이 1804년 양위 후 장차 수원화성에 내려와 노후를 보낼 시설이었기에 그 어떤 행궁보다도 대규모로 건설됐다. 이곳은 팔달산 동쪽 기슭 수원화성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팔달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화성행궁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 하마비 ⓒ천지일보(뉴스천지)

화성행궁 정문 앞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석 앞으로 지나갈 때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했다.

즉 말을 타고 올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이 하마비 앞인 것이다. 하마비는 주로 궁궐, 향교 또는 유명한 성인들의 사당 앞에 세워 정의를 표했다. 수원에서는 화성행궁, 화령전, 수원향교 지지대비 앞에 하마비가 있다.

◆신풍루와 600년된 느티나무

정문은 ‘신풍루’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나라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이름이 지어졌다.

1795년 을묘 행차 시 정조는 신풍루 앞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 주고 굶주린 이에게는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신풍루 앞에는 600년된 느티나무 한그루도 있다. 노거수로 화성 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온 신령스러운 느티나무다.‘영목’ ‘신목’ ‘규목’으로 불렸으며, 예로부터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목신(木神)의 노여움을 사 어려움이 닥친다고 했다. 또 소원지를 적어 걸어놓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남아 있다.

   
▲ 화성행궁 정전인 봉수당 ⓒ천지일보(뉴스천지)

◆혜경궁 진찬연 열린 정전

‘봉수당’ 정문과 그 안의 좌익문을 지나면 정전인 봉수당이 나온다. 중심 4칸을 왕권을 상징하는 편전공간으로 연출했다. 을묘원행 시 이곳은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열렸다.

진찬례 행사는 조선시대 최대의 궁중행사로 당시의 커다란 화재거리였다. 왕실의 종친과 신하들 외에도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이때 정조는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는 의미의 봉수당이라는 당호(堂號)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면서부터 이 건물이 봉수당이라 불리게 됐다.

   
▲ 혜경궁 홍씨의 진찬례 재현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봉수당 한쪽에는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 모습이 재현돼 있다. 1795년 을묘원행 시 진찬연 장면을 부분 연출한 공간으로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드리고 있고, 여관(女官)들은 왕과 혜경궁 홍씨를 보좌하고 있다. 이날 진찬연에서 혜경궁 홍씨에게 12기의 소별미와 70가지의 음식 그리고 42개의 상화가 바쳐졌다.

◆뒤주와 궁중용 악기 창고

봉수당을 바라봤을 때 왼편에는 유여택이 있다. 유여택은 평상시에는 화성 유수가 거처하는 곳으로 쓰이다가, 임금이 행차하게 되면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곳으로 이용되던 건물이다.

   
 

1795년 행차 때, 정조는 이 건물에서 각종행사에 대한 보고를 받고 하교를 내렸다. 원래 이 건물은 1790년에 건립하고 ‘은약헌’이라고 했다가 1796년 증축하면서 유여택으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의 건물은 1998년 12월 복원된 것이다.

유여택 한쪽에는 사도세자가 갇혀 있다가 죽음을 당했던 뒤주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궁중용 악기를 보관하는 창고도 있다. 옛 악기를 가까이서 볼수 있도록 전시해 놓아 궁중 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정조의 흔적인 남아있는 화성행궁은 서울의 궁궐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역사가 오롯이 남은 공간이었다.

   
▲ 화성행궁에서 활 던지기를 하는 관광객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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