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유럽이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으로부터 쓰나미(Tsnami)처럼 몰려드는 난민(難民), 유랑민(流浪民)들로 몸살을 앓는다.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난민선에는 기꺼이 자비(慈悲)의 손을 내밀던 유럽이다. 하지만 그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게 되자 난민선이 집중적으로 닿는 나라들에서 비명이 나온다. 이탈리아 그리스가 그 나라들이다. 이탈리아는 지중해 건너 아프리카에서, 그리스는 에개해 건너 중동 지역에서 난민들이 쇄도한다.

그래봤자 연(年) 수만 명 규모지만 이들이 유럽 여러 나라로 분산되지 않고 두 나라에 집중됨으로써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북유럽의 잘 사는 국가들에 도움을 청해도 들은 척 만 척이다. 유럽연합(EU) 울타리 안에서 남유럽과 형제나 다름없는 나라들이지만 돈 얘기라면 꺼내는 것조차 싫다는 듯이 손사래를 친다. 난민을 분산 수용하자는 제안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타국으로부터의 이주민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갈까 봐 날카롭게 반응하기 때문에 선뜻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집권자들에게 정치적인 모험이다. 교황 프란치스코 1세까지 나서 난민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유럽의 수치’라고 말하고 있지만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런 여론의 흐름을 타고 이민을 극히 배척하는 유럽의 극우정당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난민들은 유럽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남부 유럽 해안에 무사히 닿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행운이다. 그것으로 그들은 일단 전쟁의 참화와 기근으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출발지 본국의 사지(死地)로부터 벗어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항상 평화롭기만 한 것이 아닌 위험천만한 바다를 목숨을 부지하고 건넌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대성공이다. 그렇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살아서 유럽 땅에 도착한 난민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거나 본국에 철저한 단속을 부탁해도 난민의 홍수는 막아지지 않는다.

그들이 타는 배는 고작 ‘딩기(dinghy)’라고 하는 작은 보트이거나 다 부서져 물이 차오르는 거룻배가 고작이다. 그런 배에 바늘 꽂을 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인원이 뒤엉켜 탄다. 증언에 따르면 한국전쟁 중 함흥 철수 작전 때 피난민이 하도 많이 몰려 배에서 밟혀 죽은 사람이 있을 지경이라 했다. 눈물 나는 얘기다. 그래도 워낙 큰 수송선인 그 배는 부산까지 3일에 걸친 항해를 끄떡없이 해낼 수 있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해안에는 난파선에서 떠밀려온 난민들의 별의별 부유물들이 철썩이는 파도에 처연하게 씻기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바로 지중해 에개해를 건너다 실패한 난민선의 비참한 흔적들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많은 지역이 전쟁과 내란, 부족 및 종파(宗派) 갈등으로 빚어지는 총성 포연과 함께 살인 학살 파괴 납치가 횡행하는 참화 참극의 땅이다. 리비아 수단 콩고는 물론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로 불리는 에티오피아 지부티 소말리아 등지에서 벌어지는 지옥 같은 일상이다. 중동의 이라크와 시리아도 매한가지다. 이들 지역에서 생명의 위협과 테러의 공포, 구체적이거나 혹은 심리적인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이런 판국에 민생을 살피고 기근을 구제할 책임 있는 국가의 따뜻한 손길이 있을 턱은 더욱 없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질 만한 사람들은 죽고 사는 싸움질에 골몰할 뿐이다. 따라서 힘없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살 길은 그 땅에서 벗어나는 길뿐이다. 그렇기에 이들 특정 지역 주민의 집단 탈출, 현대판 ‘디아스포라(Diaspora)’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먼 나라들의 얘기일 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일인 것이다. 압록강 두만강을 넘거나 동해 서해 때로는 휴전선을 넘어 귀순하는 수많은 북한 주민의 대탈출이 바로 그 ‘디아스포라’가 아니고 무엇이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어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과업이며 숙원이므로 북한 주민의 이탈은 바로 우리가 숙명적으로 안아야 하는 우리의 아픔이다. 더구나 우리는 ‘디아스포라’의 역사적인 체험을 겪은 국운이 파란만장했던 민족이다. 바로 국운이 기울면서 민생이 도탄에 빠졌던 조선말과 일제의 침탈 시기에 우리 백성은 연해주와 간도, 하와이 등지로 살길을 찾아 ‘디아스포라’를 감행했었지 않았나.

그렇게 탈출한 우리 백성이 간도에는 한때 15만여 명, 연해주에는 23만여 명에 달하기도 했었다. 간도나 연해주는 건너야 하는 국경의 강폭이 몇 발짝 안 되는 지척의 거리다. 따라서 적게 또는 많은 단위로 수시로 이주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함경도에 대흉년이 든 고종과 흥선대원군 치하의 1869년 이른바 ‘기사 흉년’에는 한꺼번에 수천 명의 주민이 연해주와 간도로 집단 탈출하기도 했었다.

그때 우리 백성들의 겪었을 그 고초를 지금 이 시대의 우리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가. 그러기에는 우리가 아직도 갈 길이 먼 약간의 경제적 성취에 자만해 너무 태평함과 안일함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특히나 연해주 이주민은 1937년 옛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중앙아시아로 한 번 더 강제 이주를 당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들은 아직도 유럽에 떠도는 아프리카나 중동의 난민 유랑민들처럼 여전히 이국에 떠도는 한민족의 난민이고 유랑민이다. 그들이 스스로 난민이요 유랑민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것은 ‘우리 모두의 수치’다.

역사를 잊으면 역사의 잘못을 되풀이하기 쉽다. 우리 민족이 겪은 ‘디아스포라’ 수난사를 국운의 기로에서 민생보다 정쟁(政爭)에 골몰하는 우리 정치인들이 꼭 되짚어봐야 할 일 같다.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난민 유랑민이 양산되는 것은 꼭 그 지역, 그 지역 사정에만 국한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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