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

 

1992년 8월 24일에 한국과 중국은 수교했다. 거의 비밀리에 수교 협상이 벌어져 전격적으로 발표를 했고, 타이완(臺灣)과는 단교라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중국이 북한과 관계를 지속하는 데에 대한 제동조치를 하지 못하고, 한국만 타이완과 단교해야 한다는 수교협상과정에서의 조건을 받아들여만 했다. 한국은 타이완에 사전에 알리지 못했고 그 결과 타이완에게 배신자라는 말을 지금까지 듣고 있다. 대륙이라는 큰 시장과, 북한과 정치 경제적 후견자인 중국을 얻었다고 해서 수교에 관한 소식이 경향 각지에 대서특필(大書特筆)되고 온 나라가 들끓었다. 그렇게 시작된 수교가 벌써 25년이 됐고 그 과정에서 양국 간에 수많은 곡절(曲折)이 있었지만, 양국은 그때그때 잘 이겨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작년 7월 고고도방어미사일 사드(THAAD) 성주배치로 한·중 관계는 급랭되기 시작하더니 수교 이래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25주년을 경축하는 행사는 양국 간 따로 따로 거행됐다. 지난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측 행사에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단촐함 그 자체였다.

보통 중국은 꺾어지는 해를 중요하게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10주년, 15주년 등등, 이러한 해에는 특별하게 의미 규정을 하고 내용을 담아 행사도 크게 치르고 성대(盛大)하게 한 해를 보내는 활동 등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주년이 된 금년에는 행사기획 및 양국 간 특별 교류 활동은커녕 일체의 한국 측 건설적 수교의미부여 행사의 제안도 거절했다. 25주년 당일 전후 빅이벤트 행사마저 간략함의 극치였다. 반면에 20주년 행사가 열렸던 2012년 8월 수교 행사에는 현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당시 외교부장 등 중국을 이끄는 최고의 실세들이 대거 참석해 양국 간에 우의(友誼)를 재확인하고 양국은 영원히 문제없이 교류와 협력이 공고하게 진행될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활동을 했다. 사드라는 전략무기 배치 하나가 낳은 25년 수교의 후과(後果)는 타이완과 홍콩을 제외하고 경제적으로 상호간 4대 무역국이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군사 정치 외교적 측면에서 양국 간에 얼마나 관계가 취약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1992년 수교 시 63억 달러였던 양국의 교역량은 작년 2114억 달러로 증가 했다. 33배나 성창한 수치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80%는 중국이 없어서는 안 되는 중간재이다. 한국으로부터 부품을 수입해서 상품을 완성하고 미국 등 국가에 중국이 수출하는 구조이다. 반도체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 한국 것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은 수직적이고 한국일방이 약간 우위를 점했던 보완적 관계였다. 하지만 이제는 대등하고 경쟁적 관계가 됐다. 양국 간 기술 격차는 없어져 가고 있고 이른바 최근 회자(膾炙)되는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는 한국이 뒤지고 있다. 전자상거래, 핀테크, 드론, 전기자동차 등은 한국이 미안하지만 중국에게 경쟁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중국 대도시에 가보면 현금이 사라지고 있다. 집에서 나오면서 휴대폰으로 출근에 필요한 차를 부르고, 업무 지시 및 협조 사항을 상호 통지하고, 자금이 필요하면 은행에 가지 않고 차입하고,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상황들이 당황할 정도로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수교 25년을 맞아 옛날 중국이 아닌 것으로 돼버렸다. 사드를 둘러싼 양국의 충돌 역시 커질 대로 커가는 중국의 일방적 힘자랑의 단초로 보이는 것이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중국은 볼륨이 크다. 그것마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틈만 나면 주변국과 충돌한다. 국경을 맞대는 14개 국가 중 인도와는 국경 문제로, 일본과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로, 베트남 및 아세안과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한국과는 사드문제로 갈등이 상존한다. 수교 25주년 즈음해서 중국을 바라봤을 때 ‘중국굴기가 시작됐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씁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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