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중국의 한 방이면 깨끗이 끝날 일이 지지부진해 답답하다. 중국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유류의 90% 이상을 대주는 나라다.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다칭(大慶) 유전의 원유를 송유관으로 북에 보내 그들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해준다. 북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마운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다칭 유전은 북한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제품의 품질은 썩 좋지 않아 북한 말고는 팔아먹을 데가 마땅치 않지만 중국으로서는 돈벌이가 쏠쏠하다. 이래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다. 중국이 한사코 거부해서 그렇지 북-중을 연결하는 이 송유관을 잠그면 북의 군사 활동과 경제는 금방 마비된다. 중국이 송유관 차단을 거부하는 것은 실리적인 측면 말고도 미제국주의자들을 상대해서도 기죽지 않고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그들의 앞마당을 지켜주는 북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북은 중국에 가상(嘉尙)한 혈맹이다.  

북의 6차 핵 실험이 있은 후 미국은 이번 기회에 북을 끝장 내버릴 것처럼 강경한 제재안을 만들어 유엔 안보리에 상정했었다. 제재안 중 미국이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더 말할 것 없이 중국을 주 대상으로 하는 대북 유류 공급 차단이었다. 북핵 문제를 놓고 중국에 부화뇌동하는 러시아 역시 북한에 석유를 공급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중국에 비해서는 그 양이 대단히 적다. 따라서 미국은 자국의 여성 외교 맹장(猛將)인 유엔 대사 헤일리를 선봉장으로 내세워 중국을 세차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는 없었다. 그렇더라도 명목상으로 북에 들어가는 유류의 30%를 감축하게 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헤일리의 싸움을 직접 엄호했다. 그는 중국의 아픈 여러 급소 부위를 건드려 압박했었다.  

제재안의 효과는 중국이 속이면 반감될 우려는 없지 않지만 이 정도의 합의를 이루어내는데도 미-중 사이에 치열하게 밀고 당기는 핏발 선 물밑 외교전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미국은 중국의 원유 공급 중단 외에도 김정은과 김여정, 북의 유일 국영 항공사인 고려항공에 대한 제재도 밀어붙였지만 이는 불발되고 말았다. 대신 북의 섬유제품 수출 길은 막혔다. 북에 적지 않은 타격이 갈 것이 분명하다. 안보리 제재안의 통과는 중국이든 러시아든 한 나라만 반대하면 무산된다. 이렇기에 제재안에 대해 성이 차지 않는다는 평가는 있을 수 있지만 안보리가 안고 있는 이사국들의 역학구도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있다. 거부권 행사를 막고 만장일치 형식으로 제재안을 통과시키자면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전체적으로 보아 안보리에서 제재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됨으로써 곧 죽어도 큰소리는 치지만 북에 심한 고립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번 경우 안보리의 만장일치는 세계의 만장일치나 다름이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적잖은 압박감이 그들을 엄습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번 제재안이 그런 것이라면 북으로서는 역설적으로 안보리의 만장일치에 힘을 보태주는 역할을 하고만 꼴이 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미진한 활약에 속앓이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사전에 자기편을 들어달라고 통사정이라도 했다면 더욱 야속한 배신감, 특히 중국에 그런 진한 배신당한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중국과 러시아는 딴에는 북의 편을 들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론과 최선을 다해 싸운다고 싸웠지만 그들도 그런 정도지 더는 어떻게 북을 위해 힘을 써 볼 수가 없었다. 지탄받는 북을 더 감싸다가는 그들이 도리어 북핵 무장을 조장하는 것으로 비치어 왕따가 될 우려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과 러시아까지도 세계 여론을 살필 정도로 북핵을 반대하고 북을 비난하는 세계 여론의 벽(壁)은 엄연하고 확실하며 되돌리기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의 대외 환경이 이럴진대 북이 핵 보유를 고집하는 한 자명하게도 지금부터의 그들의 전도는 극도로 험난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조짐들이 나타났다. 멕시코와 페루가 자국 주재 북한 대사를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낙인찍어 추방시킨 일이나 필리핀이 북과의 무역 거래를 끊어버린 것은 세계적으로 북과의 외교 및 경제 교류 단절의 도미노(domino) 현상이 일 전조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북이 20년 이상 고난의 규제를 버티며 급기야 수소탄을 실험하는 핵 완성 단계에 도달한 마당에 핵을 포기하고 싶진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형세로 본다면 세계의 여론 역시 절대로 북의 핵을 용납하지 않을 태세여서 지금부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절체절명의 싸움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운명이 걸린 한판 승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싸움인 것이며 그렇다고 그들에게 승리의 확률이 높아 보이지도 않는다. 사실 싸움은 벌써 끝났어야 하고 북은 핵을 포기했어야 했다. 

문제는 우리와 논리가 다르고 정세에 대한 알고리즘(algorithm)이 너무나 딴판인 중국이다. 북의 핵과 미사일에 대비하는 우리의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야만적인 언어적 수사(修辭)와 내정 간섭이 웅변하거니와 그들은 ‘인과(cause and effect)’를 도치(倒置)시켜 논리를 전개한다. 한미군사훈련만 해도 그렇다. 북한의 도발이 있어 그것을 벌여온 것인데 중국은 도리어 한미군사훈련 때문에 북이 도발한다는 식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일당 독재국가인 이들에게는 다양한 의견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옹졸하게 한번 틀어지면 정상으로 되돌릴 소통의 접점이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중국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노상강도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 같기도 하다. 그 강도는 사람을 잡아다 침대에 뉘여 침대보다 크면 자르고 작으면 늘였다. 저들이 강대국임을 내세워 우리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이 영락없이 프로크루스테스 같다는 얘기다. 그 중국은 미국이 아니면 이 세상에 적절히 다룰 나라가 없다. 그들은 우리의 경제우위가 사라진 뒤로 우리에게는 함부로 대하지만 미국에는 조심한다. 뿐만 아니라 북이 있는 한 중국은 우리보다 북에 기운다. 그 중국에 우리는 통일에 대한 역할 가능성과 시장 잠재력에 대한 기대로 환상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 우리의 약점이 되고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소재가 되고 말았다. 결과가 허탈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그 가치가 음미되는 것은 한미동맹이다. 그렇다고 동맹에만 기댈 수 없는 일, 우리 대통령이 말한 대로 획기적인 자강(自强) 노력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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