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도랑이나 판다고 북한군 탈출을 막을 수 있을까. 북한은 지난 13일 귀순병사 오청성의 탈북 이후 바로 그가 사력을 다해 넘었던 판문점 좌측 지역에 도랑을 파고 나무를 심는 등 방어책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건만 이건 외양간 고치기 모양새를 넘어 선 것 같다. 또 오청성 병사가 전속력으로 질주해 단 몇 초 만에 건넌 72시간 다리를 임시 폐쇄했다고 하니 판문점 북측 지역은 더욱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든 것 같다. 72시간 다리의 이름 유래는 거창하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그 유명한 ‘도끼사건’이 발생했다. 판문점 경무원 박정남 대위를 비롯한 북한군이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를 자르고자 하는 미군 측 경비원들을 도끼로 폭행해 보나피스 대위 등을 살해하는 엄중한 군사정전협정 위반 행위를 저지른 것이 도끼만행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68년 1월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청와대 습격 사건에 이은 한반도의 최고 긴장을 불러온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유엔군사령부 측이 일명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폐쇄하자 북한군은 통로가 막히게 됐고, 그래서 2군단 공병여단을 동원해 72시간 안에 다리를 건설했다고 하여 다리 이름이 희한한 창조물로 남았는데 오청성 병사는 그 다리를 약 7.2초 만에 주파하는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북한군의 열악한 생활과 눈부시게 달라지는 북한 주민들의 사고방식을 다시금 간파하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된 것 같다. 올해만 해도 휴전선을 통해 사선을 넘어온 북한 군인과 주민이 11명에 달한다.

왜 그들은 목숨을 걸고 그 사선을 넘고 있는 것일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부터 시작된 대량 탈북의 행렬은 이제 휴전선 일대로 옮겨가고 있는 분위기다. 북한에 사회주의 나라를 세우고 인민의 지상낙원을 꿈꾸던 김일성이 죽고 나자 인민들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마치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져 내리는 한 나라의 종말을 목도하면서 자신들의 체제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일이 국경 도강자들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렸지만 자유와 희망을 향한 그들의 북한판 출애굽기를 막을 힘은 어디에도 없었다.

국경 탈북민들이 순수한 민간인들이라면 휴전선 일대에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30만 대군이 있다. 오청성 병사의 몸에서 나온 온갖 기생충이 말해주듯 그들은 굶주림과 기아, 그리고 질병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다. 군인들 배 곯는 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면서 국제사회의 고립과 제재를 자초했으니 과연 북한에 미래가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판문점 대표부가 자리 잡고 있는 개성지역은 북한군의 주력군인 2군단 사령부가 평산에 있고, 평양행 철도와 고속도로가 있어 보급이 가장 잘 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북한 정권의 능력은 오늘 이 지역 10만여명의 군부대에 겨우 약간의 쌀과 옥수수, 그리고 소금 정도나 공급할 능력밖에 없다. 그러니 보급 인프라가 차단되다시피한 강원도 일대의 군부대 형편은 형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군인들 3명 중 1명이 영양실조 환자들이다. 그들은 전쟁은커녕 제 몸 하나 가누기 어려운 ‘환자부대’인 것이다. 더구나 그들 대부분은 사회주의 체제 배급 제도가 무너지고 부모님들이 장마당에서 애써 벌어 먹이고 교육시킨 이른바 ‘장마당세대’들이다.

오청성 병사가 말했듯 북한의 신세대들은 배가 고파도 우리 한국의 걸그룹 노래는 즐겨 부른다고 한다. 북한 군대가 유지되는 비결이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충성심’이 아니라 한국을 희망으로 하는 ‘남조선 바라보기’인 셈이다.

판문점이 뚫렸는데 다른 지역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오청성 효과’는 휴전선 155마일에서 폭풍처럼 일어날 수 있다. 너도 나도 자유와 희망을 찾아 따뜻한 남쪽 나라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통일 전의 독일에서 일어난 대량탈출은 한반도의 휴전선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인 것이다.

정부의 평화공세는 대량탈북의 준비에서부터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또 북한 체제에서 한 나라가 고스란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본 탈북민들을 통일의 역군으로 준비시키는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이 세웠던 체제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지켜본 사람들은 거기에 절대 진리인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세우는 일을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통일 후 동독의 재건은 대부분 동독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이룩할 수 있었던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자. 한반도의 체제경쟁은 이제 후반부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고로 통일도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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