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대한민국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이 개혁의 칼날 앞에 서 있다. 마침 북한의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보위성 역시 변화의 칼날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왜일까? 왜 거의 같은 시각에 남북한 정보기관의 수난시대가 열린 것일까. 한국 정보기관의 변화와 개혁은 시대적 요청이다. 10년 만에 정권이 새로 들어섰으니 정보기관 역시 환골탈태의 운명을 비켜갈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다. 북한 국가보위성의 김원홍 보위상이 지난해 연말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칼날 앞에 물러난 후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란 한직으로 물러나더니 최근 총정치국장 황병서와 함께 처벌 중에 있다고 한다. 김원홍 대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갑자기 3대 세습이 대두될 때 김정은을 가르친 ‘가정교사’였다.

당시 장성택과 김원홍이 나서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을 추진했는데 이제 장성택에 이어 김원홍 대장이 ‘토사구팽’의 운명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가정보기관이 1961년 5.16군사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것과 달리 북한의 정보기관은 1973년 5월 김정일의 세습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출범했다. 즉 역사가 매우 짧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정보기관의 수장은 40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겨우 3명이었다. 최근 과거 김일성의 경제발전 교사였던 정준택 전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의 아들인 정경택이 새로운 4대 정보기관 수장에 올랐다는 설이 있지만 100% 확인된 것은 아니다. 제1대 보위부장(국가정치보위부) 김병하는 미련한 인물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그에게 보위부장 자리를 주자 닥치는 대로 간부들을 잡아 가두고 목을 쳤다. 

북한은 이때부터 정치범수용소가 생기고 ‘피바다’로 변해갔다. 무소불위의 김병하는 결국 숙청의 순간이 다가오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제2대 보위부장(국가보위부장)은 사회안전부장이었던 이진수였다. 그 역시 황해남도 어느 군에 현지시찰차 내려갔다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밤나무 가스를 먹고 즉사해버렸다. 아예 이때부터 김정일은 보위부장을 임명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맡았다. 그리고 제1부부장 제도를 만들어 대리체계로 정부기관을 움직였다. 그러나 김영룡 부부장도 권총자살하고 우동측 제1부부장은 김정일 사망 뒤 8인방 영구차 권력의 자리에까지 섰지만 김정은에 의해 숙청의 칼을 받아야 했다. 김원홍이 일약 20여년 만에 보위상이 된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 역시 현재는 추풍낙엽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 정보기관 수장들이 돈을 너무 많이 다뤄 부정의 늪에 빠졌다면 북한의 정보기관 수장은 돈을 긁어모으다 당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정보수집보다는 최고 지도자의 비위와 부정에 협력하다 비참한 꼴을 당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우리 국가정보원은 환골탈태로 거듭나겠지만 북한 국가보위성의 운명은 그렇게 밝아보이질 않는다. 오늘 지구상 여러 나라 중에서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정보기관의 롤모델이다. 모사드는 엘리 코헨으로 상징되는 정보 수집 능력을 비롯해 유명한 정보 수집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2011년 9.11테러와 관련한 결정적인 정보도 제공했다. 미국 정보당국이 그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을 뿐이다. 심지어 김정남과 그 가족이 2001년 5월 남미국가의 위조여권을 들고 일본에 입국하려다 제지된 것도 모사드가 제공한 정보 덕분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본 당국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항에서 그를 제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이 정보의 원천은 모사드가 수집한 것으로 뒤늦게 전해졌다. 모사드 요원도 인간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항상 한계를 넘어서는 정보 수집 능력을 보여왔다. 물론 모사드는 피비린내 나는 공작으로도 이름 높다. 

특히 ‘현대 역사상 가장 끈질긴 보복’으로 평가 받는 ‘신의 분노’ 작전은 감탄과 비난을 동시에 자아낸다. 발단은 팔레스타인 측의 테러였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 참가했던 이스라엘 체조선수 11명이 숙소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에 인질로 잡혔다가 결국 전원 살해됐다.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에 참가하러 떠났던 청년들이 시신으로 돌아오자 모사드는 ‘신의 분노’라는 이름의 보복작전에 착수했다. 이 테러에 개입한 검은 9월단 대원들을 9년간에 걸쳐 집요하게 추적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들을 응징했다. 프랑스 파리, 레바논 베이루트, 그리스 아테네 등지에서 보복 암살작전을 수행했다. 전화기에 부비트랩을, 침대 밑에 폭약을 설치하는 방식도 사용됐다. 12월 1일 한국군에 특수임무여단이 창설돼 본격적인 김정은 참수훈련에 돌입했다. 남의 걱정 할 것 없이 우리 국가정보원은 이들에게 천금같은 정보를 가져다 줄 시대적 과제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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