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저서를 통해 재벌 기업의 분식회계 사례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 '김건' 작가. ⓒ천지일보(뉴스천지)

‘분식회계와 지하경제, 그 100가지 수법’ 저자 김건 인터뷰
기업 분식회계, 막대한 사회적비용 들이고도 책임은 ‘오리무중
지하경제 조성하는 ‘간이과세제’ 폐지… “돈에 꼬리표를 붙여라”
“‘주주자본주의’ 근간 ‘회계’가 ‘분식’되면 어찌 사회가 발전할까”

[천지일보=이지영 기자]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 사태 등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하는 거대한 경제 이슈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고 있다.

국민 혈세로 들어간 4조 2000억원의 구조조정 비용은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방만 경영을 일삼고도 자기 배만 불린 기업주들의 모습에서 국민은 분노와 허탈감에 빠졌다. 부실에 기름을 부은 정부의 낙하산 인사,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대주주 산업은행과 안진회계법인 등도 책임의 주체로 떠올랐지만 명확한 책임 규명은 없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금액이 크든 작든 장부를 조작해 왔다. 필자가 근무하거나 직간접으로 관여했던 5개 재벌 그룹 20여개 계열사 중 분식회계를 하지 않은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5개 재벌 그룹의 15개 계열사에서 27년 동안 간부와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분식회계의 하수인이자 전문가를 자처했던 김건 작가의 폭로다.

김 작가는 퇴직 후 경영지침서, 경제비평서, 경제 관련 르포 등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해왔다. 김 작가의 글을 살펴보면 등장인물 간의 설전이 자주 벌어지는데, 독자는 이를 통해 복잡하게 얽힌 기업의 경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기업의 분식회계는 쉽게 근절될 일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게다가 그간 기업들의 분식회계 기법이 더 다양해지고 절묘해지는 바람에 전통적인 재무분석 기법으로는 부실기업 여부조차 구별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분식회계로 인한 손실은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태에 국한한 것이 아니다. 기업 분식회계와 장부조작이 관행처럼 폭넓게 자행되고 있어, 허수로 만들어진 재무제표를 믿고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는 사례가 허다하다. 현실은 이렇더라도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 ▲경영자 ▲종업원 ▲채권자 ▲주주 ▲투자자 ▲거래처 등에 거짓 정보로 진실을 호도하는 ‘분식회계’를 뿌리 뽑는 일은 “우리 모두의 숙제가 돼야 한다”고 김 작가는 강조한다.

◆분식회계 그 유형 140가지… “적극 추적하라”

김 작가는 구체적으로 대차대조표(재무상태표)를 통해 분식회계 유형 140가지를 설명한다. 분식회계는 회사의 영업 실적을 좋게 보이기 위해 자산 평가 방식이나 수지 상황을 속여 재무상태표나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세금 감축 ▲임금 동결 ▲비자금 조성 등을 목적으로 회사 이익을 줄이고 영업 실적을 나쁘게 보이기 위한 ‘역분식결산’도 있다.

김 작가는 분식회계의 유형으로 ‘대주주와 경영진에게 어음․수표를 발행해 대여하고도 이 사실을 숨기는 등의 기타 유동자산 분식회계 12가지 사례’ ‘존재하지도 않는 가공의 재고자산을 재무상태표에 반영하고 그 증가 이익을 손익계산서에 계산하는 등의 재고자산 20가지 사례’ ‘부실화된 매출채권을 그대로 살려 두고 대손상각 처리하지 않고 정상적인 채권처럼 관리하는 등 매출채권 26가지 사례’ ‘관계회사끼리 주식 상호 출자 또는 주식 교환 방식으로 투자자산 규모를 부풀리는 등 투자자산 8가지 사례’ 등 140여 가지를 소개한다.

분식회계를 잡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회계 장부 조작은 대차대조표 균형 논리에 입각하면 지극히 간단한 일이다. 또 은밀히 조성되는 비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려면 수출기업, 제조자, 구매자, 위탁판매자, 운송인 등을 차근차근 살펴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는 외부감사의 역할을 하는 회계법인의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분식회계는 소수의 몇 명을 중심으로 매우 단순하게 반복되는 몇 차례의 변칙적인 회계처리와 자금 흐름일 뿐”이라며 “그럼에도 들통이 나지 않는 이유는 관리 감독과 수사 책임이 있는 자들이 적당히 눈감아 주거나 적극적으로 추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회계법인은 기업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를 수행하고 해당 재무제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다. 하지만 해당 기업이 법적 시비의 대상이 될 땐 “기업 측에서 철저히 속이는 바람에 미처 잘 몰랐다”고 둘러대기 일쑤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부실을 집어내지 못한 안진회계법인도 국회 청문회장에서 “기업에서 내 놓은 자료에 따라 감사를 실시했을 뿐”이라는 답변을 내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회계법인의 변명… “재벌부터 공정하게 처벌해야”

회계법인의 이 같은 변명은 김 작가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보면 더 자세하다. “파트너들의 탐욕이 제일 큰 문제다. 아래에 있는 회계사들이 뭘 하겠나. 돈도 많이 못 받는데 어딜 가도 권력과 돈 쥔 놈들이 제일 쓰레기다. 책임을 질 주체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곧 그 법도가 무너지는 것이니, 이 또한 금융시장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

“회계사도 잘못이지만 대기업의 분식회계와 배임은 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한 책임자들 그리고 대기업 경영자들과 회계 담당자들에게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 회계사를 처벌하거나 죄를 논하기 이전에 이들부터 공정하게 처벌해야 개인투자자들에게 이롭다.”

김 작가는 덧붙여 “분식회계를 저지른 SK네트웍스, 대우건설 등 수많은 기업이 스캔들에 휩싸였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미국은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에게도 반드시 책임을 묻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며 “중대한 부실감사가 드러나면 대표의 자격을 박탈하기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부도덕한 기업인들에 대해 공정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은 거대 경제세력의 탐욕을 억제시키기 위한 제도적인 틀 개선에 먼저 나서야 한다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또 지하경제 시장의 급격한 발전이 재벌 그룹들의 분식회계나 비자금 조성, 검은 돈 수수 등을 가능케 한 토양이자, 불법을 자행하게 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지하경제 조성 배경으로는 돈, 물건, 용역이 꼬리표 없이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간이과세 제도’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영세 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대규모 도소매 업자들이 악용한다”며 “이들이 여러 명의 명의로 분산된 간이과세 업자를 내세워 간이영수증을 발행한다”고 지적했다. 세금계산서 수수 없이 대형 거래를 일삼는 도매업자들을 통해 비자금과 탈세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간이과세제도의 과감한 폐지 ▲거래증빙 수수 강화 방안 ▲각종 산업별 회수율(생산성) 등 가이드라인을 섬세하게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부조작과 탈세 방지 대책 등을 중심으로 ‘돈에 꼬리표를 붙이는’ 근본적 대안 없이는 ‘김영란 법’ 같은 법률 시행은 무망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핑계는 그만, ‘분식(粉飾)’은 사라져야

지난 8~9일에 국회서 열린 일명 ‘서별관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경제 주체들은 하나같이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강변하기에 바빴다.

김 작가는 “보편적 법칙에 어긋나는 부조리한 관행들에 대한 비판을 ‘너도 그 입장이 되어봐라’하는 식으로 말하면 어찌 개선될까”라며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거대 자본을 사용함에 따르는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주주자본주의’인데, 그 근간이 되는 회계가 ‘분식’ 된다면 어떻게 그 사회가 발전해 갈 수 있을까”라고 신랄하게 꼬집는다.

김 작가의 포부는 크다. 그는 그간 기업회계의 투명성과 부실징후 추적을 위한 ‘회계투명성 필터링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 이를 금융감독시스템, 상장 전 체크포인트, 금융기관 분석, M&A 전 평가시스템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또 독자 네이버 카페인 ’엉터리 경제 뒤집어보기(회원 2만 5000명)를 중심으로 ‘투명경제구현연대’ 등을 만들어 건전한 경제 구현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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