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요즘 김정은 정권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저 사람들이 뭘 어쩌자는 건지 통 감이 오질 않는다. 남쪽에 새로운 정권이 탄생한 가운데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북한의 연이은 군사도발을 한목소리로 규탄하고 있지만 김정은 정권은 시종일관 ‘마이웨이’다. 나름대로 계산은 가지고 있겠지만 시대가 던져주고 있는 생존의 ‘구명대’를 박차고 있는 북한의 무지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현 후 무려 여섯 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단행했으며 8일에는 무인정찰기까지 날려 보내는 직접도발로 나오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북한은 지난 5일 문재인 정부 들어 재개를 허용한 ‘인도적 대북지원’을 보란 듯이 거절했다. 그리고 6.15 공동선언 17주년 행사를 개성에서 개최하자는 남측의 제안도 거부했다. 한국이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 한마디로 말해서 “하는 행동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상당히 무안해져 버렸다. 도움을 주겠다는 쪽이 받는 쪽으로부터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북한은 아주 정확히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꿰뚫고, 계산에 맞게 나오고 있다. 북한이 원하는 일정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대화도, 교류도 없다는 식으로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인데,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원하는 대로 모두 해줄 것이라는 게 북한의 해석인 것으로 비춰진다. 그러니 계속해서 문재인 정부를 시험하면서 더 높은 조건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청구하는 계산서는 짐작이 간다. 우선 첫째로 평양은 당장 남북 간에 평화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계산은 어떻게든 올해 안에 핵무기 실험을 마무리 하고 비공식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한 가운데 나름대로 변혁의 길을 가자는 것인데, 이런 로드맵에 화해협력 분위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역압박정책을 펴 보겠다는 것이다. 햇볕정책 10년, 압박정책 10년 뒤에 등장한 현 문재인 정부가 어떤 대북정책을 펼칠지 훤히 읽고 있는 북한으로선 뭔가 새로운 링 위에서 이니셔티브를 확실하게 잡고 출발하겠다는 것이다.

다이내믹한 국제정세와 한미동맹의 요동도 북한의 선택에 기회를 주고 있는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 들어 한·미 관계 이상기류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미·중 정상이 지난 4월 플로리다 마라라고에서 만난 뒤부터 미·중 북핵 담판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중 정상의 마라라고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미·중 무역갈등을 풀려면 북한 문제를 해결하라”고 밝혔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다. 미국 학계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 본토를 공격할 수준으로 개발되기 전, 미·중 담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말이 담판이지 밀약이나 다름없다.

미 원로 안보 전문가인 그레이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벨퍼센터 소장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시 주석이 미·중 정상회담 때 “북한이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할 경우 미국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는 ‘유예 대 유예’ 조건을 제시했다고 소개했다. 앨리슨 소장은 또 시 주석 측근들이 “중국이 북핵을 해결하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는 내용도 전했다. 북핵과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맞바꾸자는 중국의 제안은 브레진스키의 강대국 담판론을 연상시킨다. 이에 대해 미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과 ICBM이 무서워 한국을 버리자는 얘기냐고 반박하고 있다.

최근 미·중 담판론이 힘을 얻는 것은 한·미 동맹이 그만큼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협상 조건은 북한의 핵 폐기이며, 현재는 대북 압박에 집중할 국면이라고 강조해도 문재인 정부는 제재보다는 대화 쪽에 방점을 두며 북한에 러브콜을 보냈다. 또 미군이 경북 성주에 배치한 사드에 대해서도 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하다며 추가 배치를 막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해 배치한 게 사드인데, 문 정부는 북핵 위협보다 내부 지지층과 중국을 더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워싱턴에서 나오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심전심(以心傳心)인지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는 북한 문제 해법이 문 대통령의 대선 유세 때 주장과 유사한 것도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유예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잠정 중단을 언급한 바 있다.

즉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소소한 대화보다 미군철수와 같은 더 큰 덩어리를 요구해올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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